동화

까치도사

방글이 봉선 2012. 4. 4. 13:52
    까치도사/ 양 봉 선 새벽에 잠이 깬 건호는 벌떡 일어나 농구공을 들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다른 날은 수업 마치면 학원 가느라 좋아하는 농구도 못했거든요. 일요일 새벽이라 그런지 친구들은 한 명도 없고 운동하는 동네 어른들 만 눈에 띄었습니다. 혼자 농구 연습을 하다가 심심한 건호는 그네를 타러 갔습니다. 더 높이 더 멀리 오르기 위해 힘을 다해 발을 동동 구르자 금방이라도 하늘에 오를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높이 오를수록 짜릿짜릿한 기쁨이 샘솟아 마냥 즐거웠고요.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을 날던 까치가 콧노래를 부르며 그네를 타는 건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까악 깍. 건호야, 안녕! 우리 친구하자." 밑도 끝도 없는 까치의 말이었습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어?" 건호는 콧방귀 뀌며 비꼬듯 말했습니다. 그래도 까치는 간절한 눈빛으로 건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까악 깍. 넌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거든. 우리 친구하자." 마땅찮게 받아들인 건호가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너와 사귀어서 뭐가 좋다는 거야." 그래도 까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까악 깍. 저기 매혹산에 오르다보면 큰 바위가 있지?" "그래서?" 아니꼽게 쏘삭대도 까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까악 깍. 그 곳은 친구들의 비밀장소이기도 하고?" "어? 어떻게 알았지?" 그제야 건호는 그네에서 내려 의자에 걸터앉으며 다소곳이 말했습니다. "까치야! 날 어떻게 알았지? 이리 내려와 궁금증을 풀어주렴." 까치는 고맙다는 듯 머리 위를 한바퀴 맴돌더니 땅위로 내려와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꼬리를 땅에 닿지 않게 약간 치켜들고, 다리를 앞뒤로 번갈아 움직여 춤추듯 건호 앞을 걸어 다니다가, 양쪽 다리를 모아서 깡충깡충 뛰기도 하더니 잽싸게 날아와 앉으며 정답게 말했습니다. "까악 깍. 난 널 잘 알아. 늘 지켜봤거든. 그래서 널 택한 것이고……." "뭐?" "까악 깍. 미안, 미안해. 기왕 놀랜 김에 다 털어놓을게. 실은 난 까치로 탈바꿈한 까치도사란다." "까치도사라고?" 건호의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을 마친 까치는 금세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자한 모습의 도사로 변신해 건호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난 매혹산의 큰 바위에 살고 있단다. 바위 속에 나만의 공간인 동굴이 있거든. 동굴 속엔 신기한 물건이 많지. 필요한 건 요술로 뭐든 만들 수 있으니까. 건호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어. 낮잠을 자는데 동굴 밖에서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설잠을 깨웠으니 짜증나지 않겠어. 그래서 벌떡 일어나 골탕을 먹이려 했는데 바위가 오히려 날 혼내는 거야. 착한 아이들이 여럿이 모여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자는 의논을 하는 데 무슨 짓이냐고. 그때 난 반성했단다. '어린 너희들도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하려고 애쓰는데 난 뭐란 말인가. '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지. 그 후 까치로 변하여 기회를 엿보았어. 건호와 사귀기 위해……. 엄마는 시인이시고, 아빠는 파출소에 근무하시는 것도 다 알아. 건호야! 아빠께 부탁해서 외롭게 홀로 사는 노인이나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찾아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편한 시간에 그들을 찾아가 내가 만든 물건을 전해 주렴. 그것은 메추리 알만한 작은 요술단지인데 사람의 마음을 읽는 노래단지지. 예를 들면, 외로운 할머니가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노래가 흘러나와 기쁘게 해드리고, 병에 걸려 누워있는 친구가 있다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노래가 흘러나와 아픔을 잊을 수 있거든." 말을 잠시 멈추고 건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까치도사가 살포시 웃으며 건호의 볼을 꼬집더니 물어보았습니다. "어때? 신기하지 않니?" 건호는 까치도사의 말에 홀린 듯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요. 까치도사는 그런 건호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한바탕 너털웃음을 껄껄껄 터트리며 말했습니다. "그 요술단지는 다른 사람 눈엔 띄지 않고 착한 건호의 손에 닿아야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니 필요할 때마다 큰 바위를 찾아와 가져가렴. 좋은 일을 할 땐 요술단지가 말을 잘 들어도 나쁜 일을 할 땐 요술단지가 방망이로 변하여 두들겨 줄 테니 내말 명심하고." 말을 마친 까치도사의 표정이 우스워 고개를 끄덕이던 건호도 덩달아 깔깔대며 배꼽을 잡았습니다. 한참을 깔깔대던 건호는 깨끼 손가락을 걸며 까치도사와 약속을 했지요. "항상 똑같은 마음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기로……." 둘이 마주보며 다짐을 하고 있는데 은송 누나가 교문 앞에 서서 건호를 찾는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건호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까치도사를 바라봤지요. 까치도사는 걱정 마라는 듯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습니다. "누나 눈에는 네가 안 보인단다. 어서 가 보렴. 좋은 일 많이 하고……." 말을 마친 까치도사는 금세 까치로 둔갑하여 높푸른 하늘로 잽싸게 날아갔습니다. 건호는 은송 누나가 찾는 것도 잠시 잊은 채 아쉬운 듯 파란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곁에 다가온 누나가 건호의 팔을 흔들며 물었습니다. "건호야~. 혼자서 뭐 해?" "응? 으~ 응. 아무 것도 아냐." 건호는 멋쩍은 듯 씽긋 웃더니 색다른 비밀을 간직했다는 뿌듯함으로 농구공을 가슴에 안고 누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는 까치도사의 마음도 건호와 똑 닮아 잊지 못할 날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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