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사랑해요, 할머니!!!

방글이 봉선 2007. 4. 24. 06:34

      사랑해요, 할머니!!! 싱그러운 햇살이 깃털처럼 하얗게 나부끼고 있는 아침. 창문을 열자 어디선가 꽃향기가 콧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은 할머니와 어디로 나들이를 다녀올까?’ 라는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방에서 비명소리가 난다. 놀란 선이는 잽싸게 뛰어가 할머니 방문을 열어보았다. 무서운 꿈을 꾼 듯 할머니는 온 몸에 땀이 젖은 채 깨어나 누가 꼬집기라도 한 듯 큰소리를 냅다 질렀던 것이다. 흠칫 놀란 할머니는 선이를 빤히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선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얼른 제자리에 일으켜 앉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숨소리도 빨아들일 것 같은 찰나. 선이는 울컥 눈물이 나는 걸 참으려고 할머니 품에 파고들었는데 쾨쾨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할머니 몸에서 냄새나는 이유는 뭘까?’ 날마다 씻어 드리지만 예전의 깔끔함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얼굴 모습만 할머니 일뿐 전혀 남처럼 느껴지는 할머니. 어렸을 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불쌍해 보여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 속옷을 옷장에서 꺼내 바꿔 입혀드리려 하자 선생님에게 야단맞은 아이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실 때 주방에서 일하던 엄마가 소리도 없이 들어와 잽싸게 거들어 주신다. 참으로 “노인성치매”라는 병은 이상하다. 기억력, 이해력이 무디어져 가족이 생각지도 못할 엉뚱한 짓을 하면서도 할머니는 언제나 심드렁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선이가 골똘히 생각을 해봐도 할머니 정신은 딴 데로 멀리가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식구들만 할머니가 몰고 온 작은 파장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일 뿐 대책이 서지 않는다. 할머니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피지만 차도가 없다고 늘 마음 아파하시는 엄마가 어린 선이의 눈엔 측은해 보인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처럼 배고픈데 빵을 안 준다고 채근대기 시작한다. 엄마는 금세 일어나 나가시며 말한다. “어머니! 잠시만 기다리셔요. 바로 가져다 드릴 게요.” “냉큼 다녀와라. 말하기 전에 줘야지, 못 된 것 같으니라고?” 불호령이 떨어지자 선이는 감정이 없고 차기만 한 시멘트 같은 마음으로 변한 할머니에게서 정이 뚝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부족하다 탓하지 말고 살아계시는 것에 만족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모든 것을 수용하는 엄마가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엄마는 할머니가 신비한 마법의 주문 같은 이야기로 때를 쓰실 때 얼떨결에 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빵을 가져오신 엄마에게 선이는 답답한 분위기를 바꾸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는 어쩌다 저렇게 되셨을까? 엄청 궁금해요.” “호호, 엄마도 이일 저일 하다보면 아침까지 기억했던 것을 점심때가 지나서는 까맣게 잊어버린단다. 어느 날 엄마도 할머니처럼 변할지 모르니까 선이가 잘 보고 배워둬라.” “에구!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싫어요, 엄마!” 무척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툴툴대며 대꾸하는 선이의 귓바퀴를 잡아당기며 엄마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한다. “선아! 할머니 모시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 다녀올까?” 대답도 하기 전에 바짝 다가선 엄마가 선이를 부추기며 말한다. “새벽에 선이가 좋아하는 김밥이랑 빵이랑 만들어 놨단다.” “우와! 울 엄마 최고. 어찌 그리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나요, 네?” “할머니가 눈감아도 훤히 알 수 있는 곳을 모시고 다니면서 옛일을 떠올리게 하다보면 치매가 나아질 수도 있거든.” “아하! 그렇군요. 몰랐어요. 역시 엄마는 효성이 지극해요. 호호.” 선이가 너스레를 떨자 얼른 떠날 채비를 하라며 주방을 향한다. 할머니가 집에 계시면 어려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때가 종종 생기기 일쑤였다. 조금 전처럼 빵을 드시고도 금세 잊어버리곤 안 준다고 야단치는 선수이시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채워 놓으면 대변본 후 치운다고 그냥 빼서 방에 도배를 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을 저질러 놓고서도 밋밋한 기억 되새기고 싶지 않은 듯 어김없이 시작되는 침묵의 연속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애매모호한 행동을 반복해도 엄마는 모든 생각을 버린 듯 도리질 칠뿐 상처 받지도 않는 대단한 분이다. 부지런히 겉옷을 입혀 드린 후 준비한 먹거리를 싣고 나들이를 가는 동안 가로수의 버드나무가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 준다. 선이가 유치원 다닐 적엔 웃지 않는 할머니 얼굴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동물원에 도착하여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벚꽂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려 엄마와 선이는 무던히 애를 썼다. 동물원의 지리를 다 꿰뚫고 계시는 할머니였기에……. 벚꽃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동안 낯설고 어색하지 않은 포근함을 보여주려는 마음이 할머니에게 통했나 보다. 할머니는 가슴 속에 응어리진 외로움이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 없어진 듯 정답게 선이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선이야! 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꽃이 뭘까?” 노인성치매에 걸린 후 향기 없는 슬픈 그늘에 휩싸여 지내시던 할머니가 아니었던가. 거짓말 같기도 하고 참말 같기도 한 다정한 물음에 못 믿기듯 꽤 오랜 동안 놀란 눈으로 엄마와 선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선이에게 다시금 인자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선이야! 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꽃이 뭘까?” 치매에 걸리신 후 멍하게 앉아있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까맣게 태워버린 아픔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병에서 치유되신 듯 기억을 더듬으며 말씀하신다. “꽃의 아름다움은 열흘을 못 간단다. 한갓 풍경에 불과한 것이지. 그러나 아기의 웃음은 피면 필수록 환하기만 해. 벚꽃 길을 거닐다보니 선이가 어렸을 때 웃던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구나.” 모든 이야기를 뒤죽박죽 쏟아 놓는 할머니가 짜증나고 힘들어도 용기를 북돋아주던 엄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 엄마는 할머니와 선이의 손을 맞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더도 덜도 말고 지금 같은 맑은 정신으로 이대로만 살아 계심을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아멘.” - 양봉선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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