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꼴찌도 쉽지 않대요

방글이 봉선 2006. 8. 12. 06:58

다정이는 선생님이 두 손 번쩍 들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잘하는 재주꾼이에요.
비록 공부는 반에서 꼴등이지만 그저 밝게 자라는 게 대견스럽기 때문에 다정이를 나무랄 수 없어요.
다정이는 5살 때 엄마를 여의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힘겨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거든요. 머리는 좋은데 세상을 비관하며 사는 아버지 위로하느라 자주 수업을 빠진 다정이는 어쩔 수 없이 꼴등을 도맡아 하곤 했지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여건이 맞지 않은 다정이!
수업 마치자마자 밤늦게까지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파김치처럼 지쳐 집에 와선 아버지 시중을 들거든요.
학교에선 매력과 인기만점인 다정이를 모르는 아이는 간첩이라고 말할 정도예요.
왜냐고요?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 가게에서 3년째 일하는 동안 저학년 동생들과 고학년 언니들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어 그들이 뭘 원하는지 족집게처럼 꼭 집어 맞추기 때문이지요.
다정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저학년 동생들의 가려운 곳을 찾아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도 했어요.
그래서 다정이 주위에는 늘 좋아하는 팬들이 줄줄 따라 다녀요.
학교에선 공부만 제외하고 모두의 부러움 대상이지요.
아버지는 그런 다정이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술만 마시는 거예요. 그걸 본 남들은 아버지를 손가락질했지만 다정이는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며 편안하게 모셨지요.
다정이는 아버지 스스로 슬픔에서 빠져 나오길 바라며 절대 힘들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효녀였거든요.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방을 청소하던 다정이가 가슴을 움켜쥐며 방안을 뒹구는 거예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 응급차를 불렀어요.
병원에 간 아버지는 생각지도 않은 끔찍한 소리를 들었어요.
"심장병입니다. 입원시키세요."
의사의 말 한마디에 하늘이 노랗고 머릿속이 빙빙 돌았어요.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어요.
입원은 했지만 엄두가 안 났어요.
'이 일을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고통이 많았어요.
다정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또 미어졌지요.
밤새도록 술에 취한 꾀죄죄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만나 뵌 아버지는 불쌍한 다정이 얘기를 들려 줬어요.
어안이 벙벙한 듯 한동안 창 밖을 내다보던 선생님이 말했어요.
"세상에! 엎친 데 덮친 격이군요. 다정이 아버지! 이젠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이제부터라도 술은 조금씩 줄이시고 다정이를 위해 굳세게 사는 모습 보여 주셔야 지요?"
담임 선생님의 따끔한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듯 말했어요.
"죽은 아내를 못 잊어 비관만 하며 살아온 내가 못난 놈입니다. 다정이 하나만 믿고 살아왔는데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선생님! 어쩌면 좋을까요?"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다정이 아버지! 힘내세요. 약한 모습 절대 보이지 마시고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정이는 정신력이 강해 곧 나을 겁니다. 어서 병원에 가보세요."
아버지를 돌려보낸 뒤 학교엔 다정이가 심장병으로 쓰러졌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어요.
학교에선 다정이를 돕자는 의견이 와르르 쏟아졌지요.
평소 덕을 쌓은 다정이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친 거죠.
소문을 들은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다정이 엄마가 되겠다고 나섰어요.
아주머니도 가족을 교통사고로 모두 잃고 혼자서 외로이 살면서 다정이의 사정을 접하곤 희생하기로 마음을 굳힌 거예요.
동네 사람들도 기관 단체와 방송국에 다정이의 딱한 사정을 말하고 돕자는 서명운동을 벌여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다정이가 심장병에 걸리자 급격한 변화가 다가왔어요.
아내가 생긴 후 안정을 얻은 아버지가 차츰 술독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은 거지요.
곳곳에선 다정이를 돕자는 운동이 벌어져 수술과 치료비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요.
다행히도 심장병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여 다정이가 퇴원을 하게 되었어요.
병원에 있는 동안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살던 집을 정리하고 슈퍼마켓으로 이사를 해 아버지는 새 직장을 다니시고, 집안 일은 새엄마가 도맡아 해주어 아무런 걱정이 없었거든요.
모두의 도움으로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 다정이는 가정이 안정되자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게 제일 큰 기쁨이었어요.
언제 꼴등했냐는 듯이 성적도 상위권으로 껑충 올랐어요.
성적을 본 얄궂은 친구들이 다정이를 놀리며 물었어요.
"맡아 놓고 꼴등하던 얘가 어쩐 일이니?"
다정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능글맞게 말했어요.
"나도 꼴등하고 싶은 데 맘대로 안되네?"
다정의 말을 들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다정이를 불끈 들어 헹가래를 치며 큰 소리로 합창을 했어요.
"다정이 만세! 다정이 만세!!!"







      ♬ 사랑의 테마 / 박인수 이수용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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