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동규의 사춘기

방글이 봉선 2006. 8. 30. 10:09


      동규의 사춘기 / 양 봉 선

      기다란 골목 끝닿는 곳에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그 곳은 아빠,엄마 그리고 외아들 동규가 사는 곳입니다. 가진 것 없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가족에게 걱정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말씀 순종하며 학교에서도 모범이던 동규가 돌변한 때문입니다. 웃는 날보다 우거지상으로 지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친구들도 불량배만 사귀더니 말투가 거칠어지고 엉뚱한 짓만
      곧잘 했습니다. 조용하던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잘난 아들 덕분에 아빠와 엄마가 화병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수없이 달래 보았지만 역효과만 불러 올 뿐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엄마는 고민끝에 돌파구를 찾으려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자녀 교육 상담실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할 말을 잃고 쓴웃음만 머금었습니다. 동규의 행동은 사춘기 반항으로서 물질적 빈곤으로 인하여 생긴
      병의 일종으로 들어 줄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죠. 속 빈 강정처럼 요구조건은 자꾸 늘어만 갔습니다. 어려운 살림하느라 허리가 휠 판국에 외아들 동규 고집은 유별나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평소 착하던 아이가 말썽꾸러기로 변하자 대책이 안 섰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금요일 오후, 아빠는 동규를 붙잡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을 치셨습니다. "못된 망아지 같으니라구. 자식 없는 셈 칠테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 동규는 아빠를 약올리듯 피식 웃으며 오만 불손한 태도로
      말대꾸를 합니다. "아빠는 지금까지 뭘 했기에 남들처럼 여유롭게 살지 못하고
      이모양 이꼴로 삽니까? 외식 한 번 시켜준 적이 있습니까? 해마다 얻어 입고 사는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나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집 나갈 겁니다." 할 말을 마친 동규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텃밭을 다녀오던 엄마는 줄달음치는 동규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 앞에 닿았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니 집안 공기가 다른 날과 달리 썰렁했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빈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는 동규 아빠
      얼굴엔 근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엄마가 곁에서 어물쩡거리자 한숨을 푹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홧김에 꼴 보기 싫으니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라 했소." "네! 뭐라구요? 어떻게 낳은 아들인지 벌써 잊으셨단 말이에요?" 동규 낳을 때 생사를 넘나든 엄마였습니다. 갑자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중환자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탓에 더 애착이 가는 동규입니다. 애지중지 키워 온 동규가 세상 물정 모르고 천방지축 날뛸
      때 다독여주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도리이거늘..... 동규 아빠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가슴 한 켠에 또아리를틉니다. 하지만, 시급한 문제는 동규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동규가 갈 만한 곳을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친구들과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 동규 소식을
      물었읒나 모두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저녁놀이 붉게 물드는 듯하더니 금방 어둑어둑
      해졌습니다.
      조바심치며 애타게 기다렸지만 동규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불안과 초조로 지새기를 하루, 이틀, 사흘……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하는 아빠, 엄마의 얼굴은 전혀
      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나흘째 되던 동틀 무렵. 대문이 열리는 듯 싶더니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가 방 문을 열고 보니 꿈에 그리던
      동규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허둥지둥 맨발로 잽싸게 달려갔습니다. 뒤따라오던 아빠가 동규를 들쳐업고 방으로 들어와 반드시 눕혔습니다.
      동규의 몸을 만져 보니 불덩이처럼 펄펄 끓었습니다. 땟국이 흐르는 옷을 보니 미운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걱정만
      앞서는 아빠와 엄마입니다. 한참동안 냉찜질을 하며 온몸을 주물러 주니까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살며시 뜨고 엄마를 불러 봅니다. "엄-마-아!" "그래.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엄마는 동규 손을 꼬옥 잡으며 다독여줍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빠." 달기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빠의 옹도라진 마음이 금세 봄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아빠가 거친 말을 내뱉어 실망이 컸지? 동규야! 아빠 밉다고
      가출하다니.... 전혀 예상 밖이라 깜짝 놀랬구나. 그동안 어디서 지냈니?" 따발총처럼 연달아 물어보시는 아빠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습니다. "불같은 성질 못이겨 뛰쳐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어요. 무작정
      걸어다니다가 다리가 아파 시골 정자나무 아래 누각에서 잠을 잤어요.
      다음날 아침 동네를 돌아다니다 개울가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동안
      한심한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아빠가 무서워서 꾹 참았죠. 밤이 다가오자 집과 엄마가 그립고 배가 몹시 고팠지만 물로 때우며
      또 누각 신세를 졌지요. 시골 아이들을 사귀어 밥 한 끼 얻어먹는데 눈물이 쏟아지데요. 부모님 사랑만큼 더 고귀한 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옆에서
      충고해 주는 형들도 있었거든요. 알면서도 용기가 안 나 온종일 들판을 거닐다 아빠, 엄마 계신 집까지
      힘겹게 죽을 힘 다하여 걸어왔는데 집 앞에 다다르자 맥없이 쓰러진 거예요." 울먹이며 용서를 비는 동규를 바라보는 아빠. 엄마 가슴은 막혀 있던
      하수도관이 뚫린 것마냥 시원해졌습니다. 가출해서 고생한 동규는 집에 오자 눈에 띌 정도로 얌전해지고
      의젓하게 변해 갔습니다. 호화롭게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럽고 시샘날 때도 많았지만 스스로
      억제하며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하게 자라 부모님께 효도하고 돈돈 많이 벌어 먼
      훗날 자신처럼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찾아 돌봐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보기도 아까운 동규가 한 번의 가출로 마음 다잡고
      예전보다 착실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대나무 숲 속에 사는 뭇새들도 독불장군처럼 불평불만 많던 동규의
      사춘기 반항을 이해한다는 듯 꽁지를 깝죽거리며 즐거운 합창을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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