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제주도(더 아름다운 운치 속에)

방글이 봉선 2011. 4. 22. 07:14

더 아름다운 운치 속에/ 양봉선


 매사에 밝고 적극적인 자세와 특유의 붙임성으로 열정을 다하는 시청 여직원의 모임인 "개나리회"에서 「한번 구경 오십시오」로 유명한 1950M의 한라산을 향하여 극기 훈련을 떠났습니다.
 그 옛날 말달리던 선구자를 찾는 마음으로…….
 철부지시절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으로 뒤척이다 새벽 5시30분, 약속된 민원실 앞에 모인 56명 여직원의 모습은 마치 어떤 긴장감에서 해방이나 되는 것처럼 나팔꽃이 활짝 웃는 듯한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출발 전 가려울 곳 없도록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 임원들의 민첩한 봉사활동으로 준비된 점심과 음료수를 챙겨 차에 올라 인생을 보다 멋지게, 알차게, 젊게 주렁주렁 엮어 오라는 책임자 분들의 환영을 받으며 2대의 버스는 전주를 출발했습니다.
 버스 속에서 가이드 뚱이 형을 만나 산에서의 응급대처 방법 및 주의사항을 듣다보니 어느 새 광주공항에 도착했지요.
 비행기에 오른 여직원들마다 터질 듯한 기쁨과 짜릿한 그리움이 뭉뚱그려지는 시간을 보내고자 모두 들떠있는 듯 보였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회생활에 있어 나태해진 마음에 활력을 불어놓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평소엔 저마다 얼굴이 다르듯, 개성도 저마다 다르지만 여행에서만은 하나로 뭉치게 하는 아이러니가 있듯이…….
 제주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된 관광버스를 타고 곧 성판악으로 향했습니다. 성판악에서 산행 못할 여직원 3명은 관음사에서 만나기로 하고  진달래밭 산장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는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하더니 완만한 경사에 왜이리 돌이 많은지,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르다 보니 힘이 부쳐 자꾸 뒤 처지게 되었습니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두 달 전부터 가까운 야산을 주말마다 올랐건만 나이는 못 속인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지요
 산행할 땐 갈지(之)자로 오르면 수월하다는 남편의 말을 떠올리며 나이테인양 꽁꽁 굳은 몸을 그윽한 나무의 숲과 향기에 취해 서서히 올라가는데 하산하는 분들이 12시 30분까지 진달래밭 산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입산 금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젊은 여직원들은 생글거리며 가뿐가뿐 걸음을 옮기지만 중년층의 여직원들은 겨우 앞만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걸을 수밖에.
 오르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시러 고개를 들었더니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들이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머리 위에 뜨거운 햇살을 이고 서있었습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얽히고 설킨 뿌리들이 높이 오른 만큼의 깊이로 뿌리를 내리 뻗고 있어 끄덕 없이 세월을 견디어 내는 듯 보였습니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을 통해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숲에 가려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나긴 길을 걷다보니 진한 산더덕 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아!"
 하늘 물이 밴 서로의 가슴에 물길을 트는 시간이었지요.
 듣고픈 음악이 흘러나올 때 기쁨이 배가되듯이…….
 진달래밭 산장에 도착하여 도시락을 펴자마자 바로 올라가지 않으면 입산통제라는 방송에 놀라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는 공통 생각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정상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흩어진 머리카락을 손 빗으로 쓸어 넘기며 힘겹게 뒤따라오는 언니와 동료들을 보니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찾아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단합된 여직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만 보였지요.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새들의 영롱한 노래와 장단맞추듯 연녹색의 새순과 야생화가 작은 바람에도 수런댔습니다.
 각기 알맞은 크기로 어우러져 있는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자연과 일체감이 되었을 때 정상인 백록담에 도착했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은 날씨에 선명한 모습의 백록담을 보자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빼앗길 정도로 잘 보존된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져 살아온 날들이 수묵으로 번져오며 내 안 울타리에 헛된 것들이 사르르 녹아 내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색다른 뿌듯함을 누린 멋진 날이라며 환호성을 지르자 맞장구치며 박장대소하던 여직원들의 즐거워하던 모습…….
 산이 무언(無言)으로 나의 심신(心身)을 단련시켜 주는 것은 신라의 화랑도 유오산천(遊娛山川)에서도 나타나듯이 산은 다정한 친구보다, 훌륭한 스승보다 더 위대한 능력을 아낌없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거든요.
 스스로 내면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면서 서로 의식 밑바탕 깊숙하게 깔려있는 내면을 헐어내고 얼기설기 얽힌 여직원들의 인생도 들어보면서 늘 좋은 생각으로 지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와 삼각봉에 이르러 정상을 바라본 우리는 깜짝 놀라며 서로 얼싸안고 좋아했답니다.
 왜냐고요?
 기온 변화로 안개가 자욱해서 한치 앞도 안보였거든요.
 기쁨도 잠시, 3시간 정도 걸으면 개미능을 지나 관음사에 도착한다는 말에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 않는 기나긴 길.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겹치는 피로에 오직 내려가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자꾸만 비틀어지는 몸을 겨우 가누고 갈지(之)자로 내려오면서 리더인 k에게 온갖 투정을 부렸지만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그 모습에선 여장부를 발견했다고 할까요?
 번거로운 일상을 벗어나 똘똘 뭉친 단합된 힘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주고 이끌어 준 가이드 뚱이 형을 비롯하여 친교의 시간을 만들어 준 임원들 덕분에 하나의 낙오자 없이 9시간의 긴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쏟고 내려와 다시 걸어서 올 것 같지 않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못하는 내 생활을 진지하게 뒤돌아보게 된 나는 잊었던 꿈을 다시 마음 한 곳에 심었답니다.
 "결국 행복은 자기 결심에서 얻는 것." 이라고.
 가슴의 노폐물을 비우고, 인생행로의 길잡이가 되어 살아가는 동안 호기심과 열정이 없으면 행복도 멀어지게 된다는 간단한 진리를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오늘 남긴 작은 족적 하나 하나가 면면히 이어져 자기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을 깨우친 전주시청의 당당한 개나리회원들!!!
 언제까지나 생생한 여운으로 남아있어, 때때로 이를 되새기며 지낼 수 있음에 축복 받은 인생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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