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닐라에서의 색다른 행복

방글이 봉선 2011. 5. 26. 07:13

마닐라에서의 색다른 행복

양 봉 선

  2011.3.18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여유롭게 어디를 다녀온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다.

 몇 년 전부터 부부동반 거시기(巨視起) 모임에서 회비를 모아 작년 겨울 일본을 가기로 했지만 저렴한 경비로 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오자는 의견을 내세워 아들이 있는 필리핀으로 여행지를 바꿨다.

 필리핀은 공식적으로는 영어를 사용 하지만 동족끼리는 필리핀어(따갈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을 아끼기 위해 두가지를 잘 하는 아들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떠나고자 했던 기간에 일본은 갑작스런 해저지진 쓰나미로 폐허가 되 버렸다.

 ‘누가 다가 올 일을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의 신인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셨으리라 믿을 수밖에…….’

 혼잣말로 너스레를 떨어 보았다.

 받아 놓은 날은 기다리지 않아도 금세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던 전날 밤.

 퇴근해서야 4박 5일 동안 입을 옷이며 준비물을 챙기다보니 순식간에 12시가 가까워 온다.

 남편은 새벽 1시 반에 깨우라며 9시 조금 넘자 꿈나라로 떠났다.

 그냥 날을 지새우자니 피로가 엄습해와 알람을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잘 시간이 지나서인지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릿속은 초롱초롱하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부족한 게 있으면 누웠다 다시 일어나 챙기다가 살포시 단잠이 들었나 보다.

 느닷없는 남편의 천둥치는 소리에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났다.

 “뭐하는 거야! 깨워준다더니 지금 1시 45분이잖아?”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라? 알람을 맞춰 놨는데…….”

어지간해선 큰 소리 내지 않는 남편의 돌발적인 행동에 기분은 나빴지만 장담했던 탓에 말꼬리를 흐리며 부산을 떨고 일행을 만나러 코아호텔 앞으로 가는 동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깜빡 잠들면 도둑이 들어와도 모른다더니……. 남편 아니었으면???’

 매일 깨워야 일어나는 남편 덕분에 늦지 않고 15명은 2시30분 리무진을 타고 전주를 출발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을 일본을 비켜 갈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행이 인천공항에 가는 동안 천만다행이라며 우리 부부에게 한마디씩 한다.

수속을 마친 후 8시40분 아시아나 OZ 701을 타고 11시25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전주에선 내복까지 입고 왔는데 마닐라는 30도라기에 가방을 찾는 동안 얼른 화장실에 들러 잽싸게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남편 왈.

 “여행을 많이 다니더니 꽤만 늘었구만”하며 피식 웃는다.

가방을 찾은 후 마닐라 공항 밖에서 기다리는 아들을 만나자 일행 모두가 놀란다.

신도시인 아얄라 알라방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187센티의 훤칠한 아들을 보자 나 또한 흐뭇하여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아들이 운영하는 학원 차와 빌린 봉고차에 나눠 타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빗대며 점심 식사를 하러 한국 식당에 갔는데 얼큰한 김치찌개 솜씨가 일품이어서 모두가 금세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마닐라 시티투어의 첫 장소인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경찰들이 차도를 막기에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고 내렸는데 곧바로 필리핀 전통복장과 악기를 연주하며 시가행진이 시작된다.

생각지도 않은 시가행진을 볼 수 있음에 기뻐하며 구경하다가, 잠시 큰 북치는 행렬에 합류하여 신바람 나게 북을 쳤더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저절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한국보다 더 넓고 호화로운『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마닐라의 인트라무로스 북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에스파냐)의 초대 필리핀 총독인 레가스피를 위해 지어진 방어 요새로 스페인 군대의 본부였고,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호세 리잘(José Rizal)이 사형선고를 받았던『산티아고 요새』에 갔다.

  리잘이 수감된 그 당시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내부를 돌아보면서 그가 죽기 직전 조국 필리핀을 위해 남긴 시 "나의 마지막 고별(Mi Ultimo Adios)"을 접했을 땐 리잘의 고통이 부각되어 가슴이 아팠다.

 일본군 점령기 동안 수많은 필리핀인들이 산티아고 요새에 수감되었다가 목숨을 잃었던 지하 감옥을 휘돌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며 잠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고 밖에 나와 보니 흙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파시그강(Pasig River) 하구가 내려다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던 많은 부분을 복구하여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으며, 특히 요새 입구의 성벽을 정교하게 복원하여 외국 관광객들의 눈길을 받는 아름다운 장소로 거듭나고 있어 아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1993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로크식 대성당을 향하여 출발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인풍으로 설계한 최초의 유럽식 석조건물이며 여러 차례의 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기적의 교회’라고 불리는 곳.

 성당의 입구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사자상이 지키고 있으며 성당 내부에는 19세기 두 명의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천정과 벽의 정밀한 벽화, 17세기에 수사들에 의해서 조각된 성가대석, 바로크식 설교단, 18세기에 제작된 오르간과 19세기 프랑스산 크리스털 상들리에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이 우리를 반겼다.

 평일엔 안을 구경할 수 없다는데 때마침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이라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어 우리 모두는 축복받은 기분이 들었다.

기왕 마주친 김에 다른 나라의 결혼식을 참석하는 것도 이색적이라 여겨졌으나 성스러운 결혼식이 시작되면 외부인은 나가야 된다기에 아쉬움을 접고 발걸음을 『리잘공원』으로 옮겼다.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리잘공원』은 필리핀의 사상가였던 국민적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을 기리는 곳으로 공원 입구의 리잘 기념탑 앞에는 무장한 헌병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4시간 교대로 지키고 있어 관광객으로 하여금 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숲이 무성하고 정원이 잘 가꾸어진 드넓은 공원을 일행이 관람하는 동안 난 잔디밭 옆의 널따란 돌 위에 누워 기다린다는 약속을 했다.

 도저히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였지만 오가는 자국인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엄습해오는 피로를 풀었더니 한결 건강 상태가 나아졌다.

저녁 식사는 바닷가가 보이는 분위기 좋은 해산물 뷔페로 정해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포만감이 들 정도로 과식을 하고 식당을 나오자마자 이게 또 웬일인가?

 바닷가 앞에서 시작 된 불꽃놀이가 장관이다.

 ‘허참!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아들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필리핀에서 7년 동안 살았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불꽃놀이 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야.”라며 호탕하게 껄껄껄 웃는다.

 기념행사가 시작되는 날인 줄도 모르고 왔다가 생각지도 않은 호화로운 불꽃놀이를 먼 이국땅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날.

 여행 온 우리를 반겨주는 환호성을 뒤로 한 채 게이들이 모여 공연하는 『어메이징쇼』를 보러갔다.

 필리핀의『어메이징쇼』는 동남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게이 쇼로서 트랜스젠더(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각국의 오페라와 뮤지컬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는데 일본의 경우는 코믹하게 꾸며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지만 예쁘게 단장한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니 괜스레 코끝이 아려왔다.

 관람 후 예약된 호텔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우리 부부는 회비도 절약할 겸 아들이 기거하고 있는 알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100평이 넘는 1층은 주방과 아이들의 공부방이 있었고, 2층엔 여러 개의 침대 방이 3층엔 드넓은 홀과 일하는 사람들이 자는 방이 있고 아들의 큰 방이 있었는데 왠지 가슴이 찡했다.

 타국에서 외로이 지내고 있는 아들에게 하루빨리 천생배필을 맺어주는 게 도리라 생각되는 뜻 깊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