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량도 지리산의 희열

방글이 봉선 2006. 10. 28. 16:22
 

 새벽 공기가 차갑다.

 전날 온 세상을 깨끗이 씻어주던 비 덕분인가 보다.

 바람막이 옷과 스카프로 만반의 채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가족이 선잠 깰까봐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개나리회 워크샵을 떠나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설렘도 컸다.

 6시 30분에 전주를 출발 통영 가는 도중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기왕 참석했으니 색다른 하루를 보내리라 다짐했다.

 전주에서 3시간을 달려 삼천포 선착장에 도착하여 40여분 배를 타고 사량도 돈지항을 가는 도중 호수처럼 잔잔하게 펼쳐지는 은빛 물결의 속삭임 속에서 다도해상의 아기자기한 크고 작은 섬들 위에 금세 인어공주가 나타나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았다.

 돈지항에 도착하여 스릴과 호연지기를 만끽하면서 바다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윗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지리산에서 옥녀봉에 이르는 종주코스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부두 근처만 포장된 상태고 나머지는 비포장 흙길이어서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을 만끽하며 돈지초교를 왼편으로 돌아 산을 오르는데 갈대가 나부끼며 웃는다.

 힘들어도 힘차게 다녀가라고 격려해 주는 것처럼…….

섬의 형상이 뱀처럼 기다랗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사량도(蛇梁島).

 돈지리에 소재하고 있는 해발 398m의 사량도 지리산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환상적인 곳이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자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팠지만 30분쯤 걸었더니 워밍업이 되었는지 견딜 만하여 낙낙한 기분이 들었다.

옥동과 내지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옥동 방향으로 10분정도 내려가 고갯마루를 지나자 길은 더욱 아기자기해 지더니 양편으로 벼랑인 바윗길 능선을 오르자 사방으로 조망이 뻥 뚫린 달바위가 나타나 기쁨이 배가 되어 행복했다.

달바위(399m)는 거대한 암봉으로 불모산(佛母山)이라 불리는데, 사량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란다. 사량도 산행의 진면목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암벽, 칼날 같은 능선으로 연이어진

바위봉우리와 암릉을 번갈아 타고 오르내리면서 달바위(일명 불모산399m)에 도착하자 온몸이 땀범벅 되어 끈적거렸지만 불모산 중간바위가 타이타닉호 뱃머리를 연상케 해주어 영화속의 주인공인양 양팔을 활짝 벌려 눈 아래 펼쳐진 .코발트빛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마냥 행복해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전주시청 개나리회.

이리보고 저리봐도 복순이들만 모였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하느라 지친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미리 준비해 온 오이와 물을 나눠 먹는 그 맛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게 아닐까?

새털구름이 두둥실 춤추는 청자빛 하늘을 우러러보며 잠시 쉬는 동안 모두 한마음 되어 ‘대장금’ 주제곡인 「오너라」를 읊조리고 희희낙락하며 1시간 정도 걷자 가마봉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버린 듯 뿌듯한 마음으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잔잔한 바다의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통통배가 눈에 쏙 들어와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가마봉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20m를 하강해야 되는데, 경사가 몹시 가파른 곳에 철다리가 놓여져 있는걸 보고 용기를 내기 위해 큰 숨을 깊이 들였다 내쉬기를 계속 반복해야 했다.

앞을 보고 내려오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여서 ‘경사를 조금만이라도 완만하게 만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평소 탁구를 열심히 쳐도 땀방울을 보기 힘든 자신이 집중력을 발휘해 네발로 암벽을 타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지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려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비좁지만 해송이 있는 그늘진 곳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푸짐한 먹거리 도시락을 펼쳐 놓고 맛있게 먹었다.

방울토마토로 후식까지 해결하고 나니 신선이 된 듯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포만감에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자 꼭 물뱀의 등을 타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정상을 오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자연을 즐기며 암릉을 유유자적하며 걷다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고달프고 힘들었던 허접 쓰레기 같은 생각을 몽땅 끄집어내어 깊고 푸른 바다에 훨훨 날려 버리는 귀한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본 후 사량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옥녀봉을 향해 조심조심 앞으로 전진했다.

 현기증 날 정도로 가파른 20여미터의 철사다리(처음엔 98개, 두번째는 40개)를 타고 내려가 다시 밧줄타고 오르기, 수직로프사다리 등등 기초유격코스 같은 험난한 장애물을 하나씩 통과할 때의 희열은 느껴본 분들은 이해하리라 확신하면서…….

 옥녀봉(291m) 아래에 다다라 위를 바라보니 우뚝 선 능선이 도도한 자세로 딱 버티고 서서 무덤덤한 표정이다.

 가다보면 위험코스와 우회코스 안내판이 우릴 반기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위험코스로 오르려면 수직으로 된 옥녀봉 바위 정상을 밧줄 잡고 오르게 되며, 우회코스로 돌아가면 로프로 된 수직 줄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되어 어디로 가든 옥녀봉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레는 가슴과 몹시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면서 위험코스를 향하여 당돌하게 도전해 보았다.

 “나는 할 수 있다! ( I can do it ! ).”

 를 큰소리로 외치고 길고 긴 숨을 ‘휴우’ 내쉬면서…….

 90도로 된 수직 줄사다리를 타고 한발 한발 내딛는 그 순간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무서움 타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굳센 의지 뿐.

 늘씬한 아우들이 뚱뚱한 자신을 보고 비웃는 줄도 모른 채 이를 꽉 물고 옥녀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 찰나,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아 황홀감에 취해 넋을 빼앗길 정도였다.

 강한 의지를 보여준 여장부 개나리 회원들!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고 올라왔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결의에 찬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산행을 하다보면 자신이 대견스럽고 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 생활의 활력을 얻는 계기가 되어 일거양득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한동안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갯바람을 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신을 아는 모든 분들의 소원이 성취되길 바라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대자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느냐는 기도를…….

 기도 후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데 Y여사님이 커피를 건네주신다.

 영원히 잊지 못할 옥녀봉에 올라 모카향에 취한 9명의 회원들.

  자신도 다음부터 산에 오를 땐 꼭 커피를 준비하여 정답게 나눠 마실 수 있는 부지런쟁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시간이었다.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며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 멋쟁이 개나리회원들.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섬 산행으로 지리산에서 옥녀봉 종주까지 약 6.25km로 5시간 정도 걸렸지만 곳곳의 위험구간을 잘 빠져나와 쇼킹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힘든 문제가 있거나, 일하다 자신이 없어질 때면 어떤 사람에게든 기쁨과 사랑을 고루 나눠주는 가까운 산에 수시로 올라 색다른 시야를 틔워 현재보다 나은 삶을 맘껏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물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할 때 깜박 잊고 산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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